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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야외음악회 복원운동으로 이어져 

 



우리 전통민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서양식 애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를 탄생시킨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1916년)의 105주기 추모식이 오는 8월 6일(금) 낮 12시 양화진 외국인묘원에서 열린다. 

프란츠 에케르트는 프로이센 왕립악단 단장으로 일하던 중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초청을 받았다. 1900년 12월 초 베를린에서 출발해 광무 5년인 1901년 2월 19일 서울에 도착했다. 헐버트가 창간한 유일한 영어 잡지 코리아 리뷰 2월호에는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에서도 20년간 활약한 바있는 프란츠 에케르트의 공헌으로 한국인의 음악 재능과 합쳐 훌륭한 시위군악대가 만들어질 것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기사를 냈다. 

에케르트는 서양악기를 배로 가져오고, 탑골공원 서북쪽 부지에 별도로 음악학교 건물을 지어 불과 4개월만에 총 51명으로 구성된 대한제국 양악대(Emperor Brass Orchestra)를 만들었다. 통역관이자 제자인 백우용(1883-1930)에게 가르치고, 백우용이 대원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친위대와 나팔수나 북이나 장구 등 타악기를 치는 고수(鼓手)들에게 정식으로 서양음악 교육을 시작했다. 백우용은 이후 이왕직 양악대, 경성악대를 이끌었다. 

대한제국 양악대는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서양악기 연주에 호기심 많은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정기공연을 했다. 탑골공원 팔각정은 연주용 무대 목적으로 설계한 음향공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건축가 심의석(1854-1924)에 의해 야외공연장에 걸맞게 지어졌다. 소리의 울림 크기나 질을 살려낼 팔(八)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음파로 착안해 8면의 한 면마다 6개의 단단한 소나무 기둥을 배열하고 사이에 양질의 울림이 나는 단풍나무를 배치해 음을 반사하는 음향판을 삼았다.
 
광무 6년(1902년) 1월 27일 고종황제의 칙령에 따라 우리 전통민요의 음악적인 특성을 파악해 9월 7일 경운궁 경운당에서 각부 대신들과 각국 공영사 및 외국 신사들 앞에서 대한제국 애국가가 초연되었다. 세계 50여국에 악보집이 배포됐다. 초연된 후에는 전국으로 퍼저 불리워졌다. 

조선에 머물던 서양인들이 들은 대한제국 양악대의 연주평은 대단했다. 뮈텔(1854-1933) 주교는 양악대 연주를 들으러 탑골공원에 자주 갔다는 일기를 남기기도 했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일제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도록 강요받으며 금지곡이 되었으나, 상해임시정부에서 계속해서 개사된 애국가로 불려졌다.

양악대는 덕수궁, 창덕궁, 탑골공원, 명동성당, 손탁호텔, 각국 영사관에서 공연을 펼쳤으나, 1907년 8월 1일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체됐다. 같은 해 9월 1일 101명의 황실음악대로 편입되었으나 고종이 붕어한 1919년 9월 완전히 해산되고 말았다. 에케르트의 제자 백우용은 경성양악대라는 민간단체를 결성해 1920년 6월 1일부터 시민을 위한 연주회를 매주 한번씩 저녁시간에 탑골공원에서 열었다. 기록에 의하면 1929년 4월 25일 봄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프란츠 에케르트는 1916년 8월 6일 오후 9시 반에 인후암으로 64세 4개월의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15년 간 우리나라 서양음악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종현천주교당(명동성당) 장례식에는 순종황제가 100원을 하사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그가 만든 연주단의 장례음악이 울려 퍼졌다. 에케르트는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인묘지에 묻혔다. 매일신보는 '악계 은인의 장서 양악 발전의 은인'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경성일보도 7,8일간에 걸쳐 보도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기생이나 농부의 노래를 듣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조선 민요에 의한 접속곡, 실내악곡들이 많으며 레코드판도 있다. 

프란츠 에케르트 기념사업회와 (사)뉴코리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산하 대한제국 양악대는 근대 서양음악의 탄생지인 탑골공원 팔각정 열린음악회를 복원해 오후 6시에 문을 잠그지말고 정기적으로 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열자는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공연문의 010-3967-0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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