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전통이 살아숨쉬는 부여 10경

by cntn 2015. 7. 22.

백제의 얼이 담긴 부여 

 백제26대 성왕이 국가 증흥의 원대한 뜻을 품고 산수가 수려하며 생활여건이 풍요로운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123년간 국력 신장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쳐 고대문화를 꽃피웠고 충효, 개척 정신을 뿌리내린 역사문화의 고장이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서 소부리(所夫里:일명 사비)라 불렀으며, 538년(성왕 16) 웅진(熊津:현재의 公州)으로부터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그 후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국이 멸망하면서 신라에 예속되어 672년(문무왕 12) 부여도독부가 설치되었고, 751년(경덕왕 10)에 이르러 부여현(扶餘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1018년(현종 9) 공주와 병합하여 감무를 두고 다스리다가 조선시대에는 1413년(태종 13) 독립하여 부여현이 되었다. 1914년 부여군 폐합 때 홍산현(鴻山縣)·임천군 전역과 석성현(石城縣)·공주군 일부를 편입해서 16개 면으로 부여군이 형성되었으며, 1960년 1월 1일 부여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삼천궁녀의 애환을 간직한 낙화암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외
* 부소산성 : 사적제5호(1963.1.21. 지정)
* 낙화암 : 충남 문화재자료 제110호(1984.5.17. 지정)

 

백제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 부소산(扶蘇山)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해발 106m 고도를 가진 부여의 진산이다.


 평지에 돌출하였으며, 동쪽과 북쪽은 가파르고 백마강과 맞닿았다. 부소산의 산 이름은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 처음 선보이며,‘부소(扶蘇)’의 뜻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松)’의 뜻이 있어, 부소산을 ‘솔뫼’라고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


 부소산은 평상시에는 백제왕실에 딸린 후원 구실을 하였으며, 전쟁때에는 사비도성의 최후를 지키는 장소가 되었던 곳이다.


 부소산 내에는 군창지,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삼충사, 서복사지, 영일루, 고란사 등 여러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해 있으며, 역사성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산이다.


 그중 낙화암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사비도성이 함락되었을 때 백제의 궁녀와 여인들이 몸을 더럽히지 않고 절개를 지키고자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은 장소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절벽에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 더 잘 보인다.


▶장중하면서도 우아한 정림사지5층석탑(定林寺址五層石塔)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 국보 제9호(1962.12.30. 지정)

 정림사는 백제 성왕이 538년 사비성(부여)으로 도읍을 옮길 때 건축한 백제의 대표적인 사찰로 왕궁 정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정림사지 절터 한가운데 자리한 정림사지5층석탑은 높이가 8.33미터의 결코 작지 않은 탑으로 탑신부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 민흘림기법을 적용하여 상승감을 보여주는 등 장중하면서 부드럽고 육중하면서 단아한 세련된 백제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백제계 석탑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1층 몸돌에는 신라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징벌하고 세운 기념탑”이란 글씨를 새겨놓아 한동안 소정방이 세운 “평제탑”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는 정림사가 사비 백제의 중심이자 상징이었음을 반증하는 상처이다.


 석탑이 위치한 곳에는 정림사지 박물관이 있다. 백제시대의 불교 수용과정을 보여주는 백제불교문화관과 정림사가 갖는 의의와 가치를 역사적, 미술사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정림사지관 등 전시관이 있으며, 석제문양 퍼즐 맞추기, 유물조각 맞추기, 문양찍어보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 궁남지사계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 문의처 : 부여군 문화재사업소 041-830-2511
* 사적 제135호(1964.06.10 지정)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연못 궁남지는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삼국사기』에 “백제 무왕 35년(634) 궁의 남쪽에 못을 파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이 연못은 백제 무왕 때 만든 궁의 정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못의 동쪽 언덕에서 백제 때의 기단석과 초석, 기와조각, 그릇조각 등이 출토되어 근처에 이궁(離宮)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신선사상을 표현한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으로 백제의 노자공은 일본에 건너가 백제의 정원 조경기술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백제가 삼국 중에서도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관광지이다. 7월에는 천만송이 연꽃들의 아름다운 향연인 서동연꽃축제가 열리고, 10~11월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진 굿뜨래 국화전시회가 열려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 문의처 : 부여군 문화재사업소 041-830-2511
* 사적 제14호(1963.01.21 지정)

세계적 걸작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백제왕릉원(百濟王陵園)은 사비시대(538~660)의 백제왕릉묘역이다.
 동쪽 나성(羅城)의 바로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묘역은 7기(基)의 고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도 각기 고분이 분포하고 있어 크게 3개의 무덤군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가운데 중앙구역에 위치한 무덤들이 그 크기나 위치로 보아 사비시대 역대 왕들의 왕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 고분군의 입지는 전통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지세(地勢)와 잘 일치되고 있어 백제 당시에 이미 풍수지리사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다.


 7기 고분중 동하총(東下塚)인 1호분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교류를 증명해 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이래 여러 차례 조사되었으나 부장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옻칠과 금박(金箔)으로 장식된 관(棺)의 파편만 남아있었다.


 최근 나성과 능산리 왕릉묘역 사이의 계곡에서 이곳에 안장된 역대 왕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절터가 조사되었는데, 그곳에서 백제 금속공예의 진수(眞髓)를 말해주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제287호)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제288호)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 천정대 백제보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 산5(천정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북포로 451(백제보)
* 천정대-기념물제49호(1984.7.26 지정)

하늘의 뜻으로 재상을 뽑은 장소 천정대(정사암)는 백제시대 산악(山岳)신앙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설화가 깃든 곳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재상(宰相)을 선출할 때 그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봉함한 뒤 이곳에 놓아 두었다가 이름 위에 도장이 찍힌 사람을 재상으로 임명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곳의 이름을 ‘정사암(政事岩)’이라 불렀다고 한다.


 천정대는 재상을 임명하는 일은 중요한 일인 만큼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하늘의 뜻을 따르고자 하였던 고대 정치사상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에는 백마강이 흐르고, 주변에는 주장산성과 백제 도성의 주축인 부소산성이 한눈에 들어와 명승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주변의 벼랑에는 임금바위?신하바위 등 기암(寄巖)들이 많이 있다.


 천정대 주변에는 백제시대의 연꽃무늬수막새 기와를 비롯한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당시에는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의 향기가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백제보(311m)는 백마강을 지키기 위하여 돌아온 계백장군의 계백위환(階伯衛還)을 테마로 하여 말을 타고 백마강을 바라보는 계백장군을 형상화하여 수문장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백제보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인 금강문화관에는 4대강 홍보존, 금강특화존 등이 있으며, 전망대에서는 백마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 백마강 수상관광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나루터로 72

 부여를 감싸돌며 곳곳을 적시는 어머니와 같은 강으로 비단결 강물이 흐른다 하여 지어진 금강(錦江)은 전라북도 장수에서 시작해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를 흘러 서해로 들어간다.

 

부여에 이르러 비로소 백마강(白馬江 16km-호암리 천정대부터 세도 반조원리까지)으로 불리운다. 강을 따라 천정대, 낙화암, 왕흥사지, 구드래, 수북정, 자온대 등으로 이어진다.


 백마강(白馬江)의 ‘백(白)’자는 나라 이름, ‘마(馬)’는 ‘크다’는 뜻으로 「백제의 큰 강」이란 뜻을 담고 있다. 백마강에는 3개소의 선착장(구드래, 고란사, 수북정)에서 유람선을 운행하고 있다. 백제시대고증을 거쳐 건조한 황포돛배는 수상관광의 멋과 흥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백마강교 밑에서는 매년 6월~10월 카누.요트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카누와 요트체험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아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 만수산 무량사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 무량사소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제1565호)
* 김시습부도(도문화제 제25호) 등 다수

 천년고찰 무량사는 시간도 지혜도 세지 않는 무량의 도를 닦는 곳으로 창건에 대한 내용은 신라 말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신라 말 고승 무염국사(無染大師, 801~888)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어졌다.
 

무량사는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살해한 뒤 임금이 된 것을 비판하며 평생을 은둔한 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때 조선시대 명승 진묵대사(震默大師, 1563~1633)도 거처했었다. 임진왜란 때 무량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탔으며 극락전은 그 후 다시 세웠다.
 

또한 왜란 이전에는 영산전(도문화재자료 제413호)과 명부전(도문화재자료 제389호) 등의 전각 명칭은 보이지 않고 극락전(보물 제356호)을 위주로 한 기록만 보일 뿐이며, 당간지주(도문화재 제57호) 및 석등(보물 제233호)과 무량사 오층석탑(보물 제185호) 역시 고려초기의 양식을 지녀 고려시대 사찰이라 여겨진다.
 그 외에도 김시습영정(보물 제1497호), 무량사미륵불괘불탱(보물 제1265호) 등 많은 유물이 있다.
 

극락전은 외관은 2층 구조이나 내부는 위 아래가 트여 있는 이른바 통층구조의 특징을 보인다.


♣ 서동요 테마파크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충신로 616

 백제무왕(서동)과 선화공주와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극화한 한국 최초의 백제역사 SBS 드라마 서동요 오픈세트장으로 2005년에 약 1만여 평의 대지 위에 조성되었다.

 

 오픈세트장 내에는 백제·신라왕궁, 왕궁촌, 태학사, 하늘재, 저잣거리 등이 있다. 이곳에서 대풍수, 태왕사신기, 계백, 조선총잡이 등 인기드라마가 촬영되었다. 테마파크가 위치한 곳은 희대의 명장이며 충신인 계백장군이 태어난 충화면 천등산 자락에 위치하며,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이 한폭의 풍경화처럼 시야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곳이다.


 세트장을 둘러싼 덕용저수지 주변 산책로는 아침 산책코스의 백미로 가파르지 않은 경사와 난이도로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다. 또한, 테마파크 옆에는 중부권 최고의 청소년수련원이 위치하여 숙박과 수련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숙박시설은 가족실을 포함하여 400명의 숙박이 가능하고, 수련시설로는 잔디구장, 짚라인, 복합첼린지 등 12종의 모험시설을 갖추고 있다.

 
♣ 성흥산 사랑나무

* 소재지 :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산1-1 (성흥산성)
* 부여군 향토유적 제88호(2007.10.1 지정)

 성흥산성에 위치(해발 약240m)한 이 느티나무는 사랑나무라 불린다. 사랑나무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띠어 성흥산의 상징이 되는 나무이다. 키22m, 가슴직경 125cm, 수령 400여년 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나무 옆에 서면 임천면은 물론 논산, 강경, 익산, 서천이 한눈에 보이고 날이 좋으면 익산의 용화산과 장항 제련소까지 바라볼 수 있다.


 지난 2006년 방영된 조현재, 이보영이 주연한 최초의 백제역사 사극인 서동요에서 장이와 선화공주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키우고, 신라궁에서 쫓겨난 선화공주를 위하여 공주의 집을 지어주고 나무의 나이테와 기후의 관계, 온돌 관계 장면을 촬영하였던 곳이다.


 또 2008년 KBS에서 방영된 ‘대왕세종’의 마지막 장면인 큰 나무에 두사람이 서있는 멋있는 장면이 이 사랑나무에서 촬영한 것이다. 그 외 계백, 일지,여인의 향, 신의, 대풍수 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사랑나무가 위치한 가림성은 성왕이 사비로 천도하기 30년 전에 축조했다. 현재 확인된 성의 둘레는 1500미터이고 성의 높이는 3~4미터이며, 성 안에는 우물 3곳, 군창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초석과 남쪽의 성문터 등이 있다.


 서해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적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사비성 외곽을 방어하는 거점이었으며, 백제 패망 이후에는 백제 부흥 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자료제공: 부여군>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