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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신라왕릉 청명대제 봉행 행사 성황

by cntn 2011. 5. 18.


한식날 조상에 대한 감사와 예 올려 후손종친, 경주시 탑동 5릉 숭덕전서

신라 개국의 성조 박혁거세대왕을 숭조하고 전국 600여만명의 박씨 후손종친들의 안녕무사를 기원하는 신라왕릉 청명대제의 봉행 행사가 지난 4월 5일 구름 한점 없는 청명한 날에 경주시 탑동 77번지 6만여평에 자리잡은 5릉 숭덕전에서 엄숙하게 거했됐다.

이날 대제 봉행 행사에는 사단법인 신라오릉 보존회 박씨대종친회 박기상 이사장을 비롯해 재관인 참봉,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대축관, 접례관, 전국시도종친회원 등 약 1천 여명이 참석 정중한 자세로 봉행됐다. 숭덕전 5릉에는 시조대왕릉, 남해왕릉, 유리왕릉, 파사왕릉, 지마왕릉, 일성왕릉 이 모셔(안장)있으며 3릉에는 8대왕이신 아달라왕릉, 신덕왕릉, 경명왕릉이 삼릉 옆은 경애왕릉이 웅장한 모습으로 모셔있다. 이날 제관들은 신라시조 대왕이 모셔있는 장소에서 1시간동안 봉행사를 마치고 이어 8대(아달라왕) 53대(신덕왕) 54대(경명왕) 55대(경애왕)의 3릉으로 이동하여 아달라왕 선조의 묘전에서 박희상 초헌과느 박영순, 아헌관, 박청홍, 종헌관으로 하여금 정중하게 제례했다.

이에 앞서 박기상 이사장은 청명대제를 맞은 인사말에서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을 하거나, 비석을 세우고 집 고치기를 비롯해 아무일이나 해도 좋은 한식날을 택해 조상에 대한 감사의 예를 올리게 된 것을 우리 모두가 감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추원보본의 뜻을 몸소실행하기 위해 이 자리를 준비하시고 참석해주신 많은 성손 여러분들의 정성어린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천 년에 달하는 신라의 역사에서 모두 8차례나 왕족의 성씨가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갈등 없이 박씨, 석씨, 김씨의 세 성씨가 평화적으로 왕권을 교체할 수 있었던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력한 외래 세력으로 인해 신라가 붕괴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적절하게 정치시스템을 개혁하여 외부 세력을 포용하고, 변형과 융화의 자세로 유연하게 대처하였던 것은 현재의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훌륭한 조상의 지혜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우리 후손들은 부디 정성스레 마련한 숭조의 행사를 통해 조상의 지혜와 음덕을 다시 한번 기리고 성손 간의 우의를 돈독히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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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왕조 약전
◎ 신라개국의 성조 혁거세대왕
기원전 69년~서기 4년, 신라의 건국시조이며 박씨의 시조로, 박씨의 단일 시조이시다.
재위는 기원전 57년~서기 4년이다.

▶기원전 69년 중국한나라 선제지절원년임자 7월에 탄강하셨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우리 시조대왕께서는 경주 나정의 큰 알에서 태어나시어 이미 나이 10여세 때 매우 출중함을 보였고, 그 탄생 또한 신비하여 존경을 받다가 나이 13세 때인 기원전 57년 갑자 4월 병진일 당시 고조선의 유민들이 세운 진한 6부촌의 촌장들로부터 왕으로 추대되어 신라의 시조 왕이 되었다.
   당시의 왕호는 거서간, 국호는 서라벌이라고 하였다.
▶5년 후 무진년 정월에 알영을 왕비로 맞이하셨다. 슬하에 3남1녀를 두셨다.
▶기원전 41년 왕은 비 알영과 함께 육부를 순행하며 농사를 장려하였다.
▶혁거세 21년 서라벌에 성을 쌓아 금성이라 하였다.
▶BC 28년 낙랑이 침범하였으나 국경에 있는 백성들이 밤에 문을 잠그지 않으며 곡식 더미가 들에 즐비한 것을 보고 도덕의 나라라 하여 스스로 물러갔다.
▶BC 20년 왜국에서 귀화한 호공을 마한에 보내어 조정에 나가 임금에게 하례하게 했다. 수도를 금성이라 하고 계속하여 궁성을 축조하고 나라를 튼튼히 하였다. 기원전 5년을 동옥저에서 사신이 와서 말 20필을 바쳤다고 한다.
▶혁거세 61년 혁거세대왕께서 훙서하시어 담암사 북쪽에 장사를 모셨으며 시조대왕 훙서 후 7일 만에 알영비께서 하세하시어 담암사 북쪽에 장사를 모셨다. 현재의 경주시 탑동오릉이 바로 그 곳이다. 숭덕전은 신라 시조왕이신 박혁거세 거서간의 성령을 봉안한 성전이다.
▶신라 2대 남해왕 3년 시조 묘를 세우고 친히 사시로 제사를 받드셨으며 친누이에게 주재하도록 하였다. 이로부터 새 임금이 왕위에 오르시면 반듯이 제사를 올리셨다.

<7대 일성왕>
▶134~154, 20년간 재위 수·111세 중국순제 영화 원년 3대 유리왕의 맏아들 또는 일지갈문왕의 아들이란 설도 있다. 원래 칭호는 일성이사금이고 왕비는 지소례 왕의 딸 박 씨이다.
▶일성왕 6년(AD-139)말갈이 장령에 내침하여 백성들을 약탈했고, 침입을 자주 받아 국력의 소모가 심했다.
▶일성왕 11년(AD-144)농업을 기본산업으로 삼은 정책을 수행하여 농사를 장려하고 제방수축과 논밭을 개간하고 은, 옥, 진주 등 백성들의 사치품 사용을 금지했다.
▶일성왕 13년(AD-146)압량의 반란을 평정 시켰다. 능은 사적 173호로 경주시 탑동 배일산에 계시다.(경주시 장전동 보호구영 10,472평)

<8대 아달라왕>
▶154~184, 30년 간 재위 중국 환제 영수 원년. 일성왕의 태자이시며 신라 8대왕에 즉위하셨고 30년간 재위하셨다.
▶갑오년에 즉위하시고 어머니는 지소례 왕의 딸 박씨이고, 왕비는 6대 지마왕의 딸 내례부인 박 씨이다.
   키가 7척이 되시고 기골이 장대하셨으며 코마루가 우뚝하신 특이한 용모에 위엄이 있어 모두가 경의를 보냈다.
▶아달라왕 3년 계입령을 통해 충주에 이르는 도로를 만들고 158년 조령의 길을 닦았다.
▶아달라왕 3년 아차 길선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백제로 달아나자 왕은 그의 송환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백제에서 이에 응하지 않아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나빠졌다.
▶아달라왕 14년 백제가 신라 서쪽의 두 성을 격파하고 1천여 명의 백성을 잡아가자 왕이 직접 군사와 기병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니 백제는 포로들을 석방하고 화친을 청하였다.
▶아달라왕 21년 왜국의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왔다고 한다.

[종강삼시]
1. 숭조(崧租) : 조상을 받들자!
   우리 신라왕손은 생명의 근원인 조상의 대은을 잊지 말고 효도와 봉제사에 정성을 다하고 가훈을 지켜
   빛냄으로서 숭조에 솔선수범 한다.
2. 애종(愛宗) : 종친을 사랑하자!
   우리의 종친은 만파일원의 일가임을 명심하고 일가끼리 믿음과 사랑으로 상부상조의 미풍을 살려 화목
   단결하는 애종정신을 발휘하자.
3. 육영(育英) : 인재를 기르자!
   우리 왕손은 품위를 지키기 위하여 국가와 사회에 유익한 후진(後進)교육에 힘써 훌륭한 인재양성에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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